이맘때가 되면 아이들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대하며 한껏 들떠 있다. 산타 할아버지를 의식하며 갑자기 착한 아이가 되려고 노력하기도 하고, 이미 산타의 존재를 눈치챘지만, 선물은 받아야겠기에 모른 척하기도 하고, 또 은근슬쩍 갖고 싶은 선물을 부모님께 흘리기도 한다.
나도 아이들이 어릴 땐 선물 고르기가 어려워, 거실 한쪽에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미고, 소원 편지를 걸어두게 했었다. 뭘 갖고 싶어 하는지, 마음을 좀 엿보고 싶은 심산이었다. 가끔 트리를 너무 늦게 꾸미거나 아이들의 희망 목록이 바뀌면 곤란을 겪기도 했다. 미리 준비한 선물은 벌써 도착해서 다용도실 구석에 잘 숨겨놨는데, 마음이 바뀌었다며 다른 소원을 빌고 있을 땐 참~낭패였지.
벌써 한 7~8년 전인가 보다.. 그 해는 몸이 안 좋아서 신랑이 혼자 뒤늦게 선물을 준비했었는데, 그 당시엔 최신식 아이템이었던 미니 드론을 준비했었다.
그런데 아빠 마음을 알 리 없는 두 아들내미 녀석이 성탄 하루 전에 갑자기 트리를 꾸미기 시작하더니 각자 원하는 선물을 적은 장문의 편지를 적어 달아 놓은 거다. 하루 만에 선물을 바꿔 준비할 수 없었던 신랑은 머리맡에 드론을 놓아두었고, 다음 날 아침, 선물을 확인한 두 녀석은...
“형, 싼타가 뭐 이래? 어린이들의 마음을 잘 안다면서 왜 원하지도 않는 선물을 주는 거야?”
“그러게. 누가 언제 드론 달랬나?”
“우리가 알아차리기 쉽게 편지까지 썼잖아! 그런데도 이렇게 다른 걸 줄 수 있는 거야?”
“우리가 어제 산타 할아버지 기쁘라고 트리도 이렇게 정성 들여 꾸며놨잖아. 근데 이게 뭐야?”
“야, 다음부터 트리 이런 거 꾸미지 말자. 나는 이제 산타 안 믿을란다.”
“치”
“치”
두 녀석의 볼멘소리를 듣고 있자니, 우습기도 하고, 저렇게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다는 게 재밌기도 하고, 그래도 신경 써서 준비했는데 저런 소리를 듣고 있는 신랑이 안 됐기도 했다.
요즘 아이들은 어떤 선물을 받고 싶어 하는지 궁금해서 저번 주 일기 주제를 '크리스마스 때 받고 싶은 선물'로 내어 주었다. 오늘 일기 검사를 하면서 쭉 살펴보니 초등 4학년 우리 반 아이들이 원하는 선물 목록은 다음과 같았다.
일단 스마트폰이 제일 많았고, 닌텐도, 맥북, 아이패드, 더쇼20, 3D 프린터 등 컴퓨터 관련이나 게임 관련 제품을 원하는 유형, 책(설민석 통일대 모험 상하, 여신 강림 책, 만화책), 롱보드, 자전거, 레고, 큐브, 드론, 그리고 새 필통, 슬라임, 인형, 아기자기한 학용품, 스트링 아트 세트, 레진 아트 등이 있었다. 동물을 키우고 싶다는 답도 있었고, ’크리스마스에 공부 안 하기‘란 답도 눈에 띄었으며, 현금 5,000원이라고 쓴 친구도 있었다.
“내가 크리스마스 때 받고 싶은 선물은 5,000원짜리 돈이다. 돈이 있으면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고 게임이나 장난감 카드 등을 살 수 있다. 그리고 내가 그 돈을 가지면 지갑 속에 넣고 나중에 쓸 것이다. 그 돈으로 게임 칩을 살 것이다. 나는 게임이랑 돈이 제일 좋다.”
5,000원으로 저걸 다 할 수 있을까 싶지만 5,000원으로 한껏 부풀 수 있는 소박함에 미소가 지어졌다.
선물 목록은 정말 많이 적었지만, 마지막은 어른스럽게 마무리하는 친구도 있었다.
"나는 받고 싶은 선물이 많다. 하지만 굳이 안 받아도 된다.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제일 필요 있는 우리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. 때론 싸우고, 때론 힘들어도 내 옆에서 나를 빛나게 해 주는 우리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. "
제일 재미있게 읽은 글은 이거다. 갖고 싶은 선물 목록과 갖고 싶은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한 뒤, 이런 글을 덧붙여 놓았다.
"뉴스에서는 산타가 자가격리 중이셔서 이번 연도에는 못 온다고 했다. 산타가 없다는 건 알지만 부모님께서는 끝까지 거짓말을 하신다. 뉴스도 마찬가지다. 그래도 선물 받고 싶은 마음은 있다. 거짓말을 하시는 이유는 동심을 지켜주시려고 그러는 것 같다. 사실 난 동심이 무려 6살 때 깨졌지만 속아드리고 있다!"
◯◯아, 나는 속아드리고 있는 네가 참~부럽다. 나한테도 착하게만 살면 선물을 주고,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내 맘이 어떤지 다~ 알아주시는 산타할아버지가 있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. 그러면 사실은 안 그런 거 다~알고 있지만 나는 잘~ 속아드릴 수 있을 것 같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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