이 책은 심윤경 작가님의 두 번째 성장소설이다. 설이가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린 성장소설이지만 사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의 성장소설이기도 하다. 또 설이가 마주하는 세상의 민낯에 분노하고 설이의 심리상태에 공감하고 연민을 느끼다 보면 어느새 내가 자각한 채 또는 자각하지 못한 채, 마음속 깊은 곳에 담아두었던 트라우마에 쌓인 어린 시절의 ‘나’와 마주하게 된다. 설이의 모습에 어린 시절의 내가 투영되면 가만히 안아주며 “괜찮아”라고 말해주고 싶다. “나는 어디에도 설 수 있다.-p.274”는 설이의 말에 기립박수를 쳐 주고 싶다.
다음의 문장들을 읽을 때는 내 아이를 대하는 부모로서의 내가 뜨끔해졌다. 내 아이에겐 절대적인 세상이었을 나는 내 감정에, 내 무지에 취해 얼마나 아이를 멀미 나게 흔들어 대었나?
“그들은 각각 최고의 것을 눈앞에 놓고도 그건 하나도 좋은 게 아니라고 손발을 내저었다. 가족이란 내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세상이다.-p177.”
“나는 이 달콤한 무심함을 시현에게 한 숟갈만 떠먹여 주고 싶었다. 내가 가진 가장 좋은 것, 최고의 가정에서 자란 시현이 단 하나 가지지 못한 그것, 허술하고 허점투성이인 부모 밑에서 누리는 내 마음대로의 씩씩한 삶 말이다.-p.244.”
“부모의 어깨 위도 알고 보니 멀미 나게 흔들리는 곳이었다. 이 세상에 흔들리지 않는 어깨는 없다. 한때는 시현이 악마처럼 사악한 아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, 그 아이도 나처럼 격렬한 어지러움에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을 뿐이었다. 그 사실을 알고 나서 더 이상 시현을 미워하지 않았다. 오히려 타인의 부러워하는 시선 속에서 남들은 모르는 어깨 위의 흔들림을 견뎌야 했던 시현이 나보다 더 외로웠을지도 모르겠다.-p270.”
마지막 작가의 말에서는 부모로서, 교사로서 ‘아이를 보는 시선’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.
“어쩌면 이렇게 착하고 속이 깊니! 하는 칭찬은 어른들이 아이들의 고통을 계속 외면하고자 할 때 동원하는 교활한 속임수일 수 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. 나는 동구의 희생과 사랑을 칭송했지만, 그 아이가 행복한지 아닌지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.-p.276.”
“어른들은 사나운 아이들의 용기와 에너지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. 그리고 침묵하는 착한 아이들이 억누르고 있는 감정과 욕망들을 밝고 안전한 곳으로 꺼내 주어야 한다.-p.277.”
“아이들이 침묵하는 세상은 옳지 않다. 아이들이 되바라지게 자기주장을 내뱉을 때, 그것을 열린 마음으로 진지하게 받아주는 진짜 어른들이 많아져서 세상이 좀 더 시끌시끌한 곳이 되면 좋겠다. -p.278.”
이 책은 번역소설에서는 느끼기 힘든 우리 말로 된 문장에서 느껴지는 힘, 감각적인 표현들이 돋보이는 글로 읽는 재미가 있는 책이다. 아이들 키우는 부모로서, 교사로서 한 번쯤 읽어봤으면 하는 책이다. 세상에 진짜 어른들이 많아지기 바라는 마음으로...